대중은 과연 개, 돼지인가? (하)
대중은 과연 개, 돼지인가? (하)
그러나 현실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짧은 일화를 통해 또 다른 진단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영국 유전학자 프란시스 골튼(1822~1911)은 시골 장터에서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황소 몸무게 알아맞히기 퀴즈에서 아무도 답을 맞히지 못했고, 또 어떤 사람은 장난처럼 무게를 써내기도 했지만 그 숫자의 평균은 소의 무게와 일치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집단이 해내는 능력, 이를 ‘집단 지성’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다음 사례는 대중이 시장의 떳떳한 주체로서 손색이 없음을 시사합니다.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가 발사되었으나 74초 후 공중에서 폭파되고 말았습니다. 몇 분 후 주식시장에서는 우주왕복선 사업과 관련이 있는 4개 기업의 주가가 폭락합니다. 하지만 장 마감 시점에 3개 기업의 주가는 3% 정도의 낙폭을 보인 반면, ‘머튼 티오콜’이라는 회사는 거의 12%의 낙폭을 기록하지요. 물론 사고 당일에는 티오콜에 책임이 있다는 어떤 공식적인 언급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고 발생 6개월 후 챌린저 호 사고조사위원회는 티오콜이 만든 부품에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제, 대중이 주도하는 정치와 문화 또한 집단 지성의 모습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네티즌이 주도하는 위키피디아의 위키백과는 초기의 시행착오를 겪은 뒤, 이제 생동감 있는 지식을 담아내는 인터넷의 백과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매일 쓸데없는 잡담이나 늘어 놓는 듯한 SNS는 때로 사회에 대한 감시나 비판을 통해 그 사회를 지키는 파수군의 역할을 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동의 민주화를 견인합니다. 개인이 집단속에서 논의하면서, 서로의 사고가 합해지고 고도화되면서 결국 서로가 깜짝 놀랄 결과를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황우석 교수의 복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대한 연구논문에 대한 소장 생명과학자들의 사이트인 ‘브릭’에서도 확인됩니다. 한 과학자가 2005년 12 월 5일 ‘브릭’의 소리마당에 줄기세포 사진 중복 의혹을 처음 제기, 이 글은 삽시간에 사이버공간에 전파됩니다 누군가 의혹을 제기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의혹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 올리고, 그러면 다시 이를 과학적으로 논증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정통적인 권위를 자랑하던 ‘사이언스’도 미처 찾아내지 못했던 조작된 논문의 실체가 규명되고, 논문의 재검증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됩니다.
1957년 제작된 흑백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미국의 배심원 제도를 소재로 전개됩니다. 이들 배심원들이 초기에 범인이라고 확신했던 용의자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이 깨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상호간의 비판적 논의와 성찰을 거쳐, 사태의 본질을 모색하고 집단적인 지성이 모아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의 한 장면
인간은 결국 크든 작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또 이를 수정하는 부단한 과정 속에 살아갑니다. 대중의 의견을 수용하거나 때로는 대중의 일원이 되어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게 됩니다. 더구나 SNS는 그 파장을 엄청나게 확장시켰지요. 어떻게 여론을 수용하고, 때로 어떻게 대중 속에서 자신을 분리해야하는지, 영원한 숙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한 공자의 견해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백이, 숙제, 우중, 이일, 유하혜, 소연 등 초야(草野)에 묻혀 지냈던 은사(隱士)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이렇게 평하셨습니다.
“그 뜻을 굽히지 않고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이는 백이와 숙제였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했으나, 말이 도리에 맞고 행동이 사려 깊었던 이는 유하혜와 소연이었어. 숨어 살면서 기탄없이 말을 했지만, 몸가짐이 깨끗했고 세상을 버리는 것이 시세(時勢)에 맞은 이는 우중과 이일이었지.” 공자는 이렇게 은사들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자신의 입장을 “나는 그들과 달라서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도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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