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위한 변론/카렌 암스트롱』을 읽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신을 위한 변론/카렌 암스트롱』을 읽고

백재선 / 전임기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역사』를 읽고 크게 공감한 터라 암스트롱이 쓴 『신을 위한 변론』을 연속해 읽었다.


암스트롱은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갈수록 잊혀가는 상황에서 종교의 참의미를 찾기 위해서『신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은 1부에서 근대 이전 사람들이 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면서 경전, 영감, 창조, 계시, 신앙, 믿음, 신비 등 주요 이슈들을 이해할 실마리를 던져준다. 2부에서는 근대의 신이 기존의 종교적 전제들을 수없이 뒤집으면서 출현하는 과정을 거침없이 기술한다.


저자는 구석기시대 원시종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오랜 종교 전통의 맥은 마음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기 위한 실천적 수련에 중심을 두는 침묵과 수련에 있고, 이에 대해서는 부처와 공자와 예수의 목소리가 같고 성서와 코란과 탈무드의 가르침이 겹친다고 결론을 내린다.


각 종교마다 성스러움을 브라흐마, 열반, 하느님, 도처럼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그로 인해 성스러움을 체험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그렇다고 어떤 것은 옳고 어떤 것은 그르다고 말할 수 없으며 이 문제에 관해서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물론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유교, 도교 등 여러 종교에서는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침묵하고 외경심을 갖고 오직 헌신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신을 알 수 있다는 공통의 믿음을 견지해왔다. 또한 사람들은 타인과 같이 느낄 줄 알며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실천적 공감이야말로 주요 종교 전통들의 최고 덕목이었다.


근대 이전 문명에는 생각하고 말하고 배우는 방식으로 뮈토스(신화)와 로고스(이성) 두 가지 방식이 존재했다. 두 가지 인정 방식은 상충 관계가 아닌 상보 관계로, 각각 고유한 기능이 나름대로 있었다.


로고스는 실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유 방식이라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인간의 슬픔을 달래주거나 힘겨운 삶 속에서 궁극적 의미를 찾아줄 수 없어 사람들은 뮈토스 혹은 신화에 의지해왔다.


중세 기독교 교부와 신학자들도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성과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초월성이 대립 관계가 아님을 깨닫고서 경전을 늘 창의적으로 해석해왔고, 당시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신에 대해 모름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로고스(이성)가 눈부신 결과를 일궈내면서 뮈토스(신화)는 신뢰를 잃었고 과학적 방법이 진리를 구하는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수단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뮈토스를 경험적, 합리적, 역사적으로 입증 가능한 것으로 해석하고,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종교 의례의 의미를 더 이상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종교적 지식은 실천적이라기보다는 이론적인 지식으로 점차 변해갔다.


근대 이후 침묵과 수련이라는 종교의 오랜 전통이 도외시되면서 점차 합리화되고 인격화된 신이 부상하면서 신에 대한 믿음이 오히려 흔들리고 급기야 종교의 교리를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의 전제 조건이 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이 종교적 진리의 본질에 관해 혼란을 겪고 있으며, 종교에 관한 논의가 논쟁적 성격을 띠면서 혼란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유일신 신앙, 근본주의, 무신론 등 종교계의 주요 이슈는 이제 사회‧정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유대교의 전통에 이어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숭배하는 유일신 신앙이 우상숭배와 배타주의를 초래하면서 종교의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유일신교의 함정 중 하나는 우상숭배다”라고 지적하면서 “인격화된 신을 주된 상징으로 삼음으로써 사람들이 그를 단지 자기 자신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한 존재로 상상하고 자신들의 생각, 관행, 사랑, 증오를 지지하는 존재로 이용하여 때로는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라고 경고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근본주의자들의 배타성과 폭력성도 정치‧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부 이슬람 근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독단적으로 교리를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강요함으로써 큰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종교사에 유례없는 문자주의로 성서를 해석하면서 성서의 신화들이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하다고 여기고 진화론을 거부하는 독단론에 빠져 있다.


현대 무신론자들은 유일신이나 근본주의에서 초래하는 문제들을 부각시키면서 사회가 더 이상 신앙을 용인하지 않고 모든 종교적인 것에 대한 존중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무신론자들이 종교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일부 측면만을 직시하여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고 무신론자들도 근본주의자들과 똑같이 편협함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근본주의는 종교의 근본 혹은 정통과 한참 거리가 먼 왜곡된 신앙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무신론자들이 근본주의가 모든 종교의 본질이자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도 환원주의적 사고의 몰입과 관용의 결여라는 점에서 근본주의자들과 꼭 닮은 셈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오늘날 종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성찰하도록 하면서 종교의 의미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제시해 준다.


“종교의 의미는 현재의 삶을 치열하고 풍요롭게 사는 데 있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삶의 고통에 짓눌려 신음하기보다 고통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고, 관대하고, 공정하며 최대한 인간적으로 살아가기를 열망한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인간 개개인에게서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신뢰를 찬미하며 이방인 가난한 억압받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갈등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다른 존재들과 화합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진리를 실천하고. 자기중심적 사고를 뿌리부터 체계적으로 없애 나가는 방법을 수련해야만 한다. 그런 수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죽어 있던 정신의 부분들을 활성화하면서 완전히 깨우친 인간이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신의 부재와 종교의 무용성에 대한 언급과 논쟁이 넘치는 상황에서 일상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 우리 스스로 신적인 정신을 깨우치고 실천함으로써 종교적 탐구를 새로 시작할 수 있음을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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