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역사/카렌 암스트롱』을 읽고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쓴 『신의 역사』라는 책은 달라진 시대 변화에 맞춰 사람들이 어떻게 신을 만들고 이해해 왔는지 추적한 역작이다. 신의 실재 그 자체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신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가에 초점을 둔다.
책은 인간이 신을 의식하면서 종교를 갖기 시작한 태곳적부터 현재 무신론이 팽배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과 종교에 대한 인간의 사유와 태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생생하게 펼쳐진다.
고대인들은 "신성한 삶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라고 믿었는데, 그 자체를 “인간 존재의 원형”이라고까지 생각하여 “신을 모방하는 것”, 즉 “닮음의 영성”을 추구하였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모든 종교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종교를 일러 “육신이 물려받을 수밖에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하면서 “인류는 예나 지금이나 지혜로운 인간(호모 사피엔스)이자 종교적 인간(호모 렐리기오 수스)이다”라고 말한다.
책은 서로 연결된 세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신의 탄생 배경과 이후 오늘에 이르는 과정을 막힘없이 풀어쓴다.
저자는 서로 연결된 세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궁극적 실재의 개념을 고찰한 결과, 서로 완전히 독립적으로 발전한 이들 종교 사이에 놀랍도록 유사한 신 개념을 발견한다, 신이란 사회의 발전 단계에서 인간의 두려움과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신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않지만,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실재로 존속해왔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는 “신 개념은 전적으로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 개념이 상징하는 표현할 수 없는 ‘실재’와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면서 “오랜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은 일상적 세계를 초월하는 듯한 정신의 차원을 경험한다는 것이 삶의 진실이고 거의 모든 주요 종교에서 이 초월을 일반적인 개념적 언어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라고 밝힌다.
또한 “다양한 시점에서 신 개념은 항상 조금씩 다른 의미를 지녔고 신이라는 말에는 하나의 개념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순되고 상충하기까지 하는 의미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라고 언급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를 살펴보면 신에 대한 객관적인 견해가 절대로 존재하지 않으며, 각 세대는 자신들에게 효과적인 신의 이미지를 창조해오면서 늘 새롭게 신을 해석해왔다.
유대인들이 숭배한 야훼 신은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 세계를 주도하는 인격신으로 거듭난다. 유대인들의 유일신 야훼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전쟁의 신이었지만 이스라엘인들 사이에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신화가 만연하면서 “초월과 동정심의 상징”으로 변모한다.
유대교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메시아로 받아들인 예수의 출현과 함께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의 탄생을 목도하게 된다. 예수는 로마가 내린 십자가형이라는 고통스러운 형벌로 사형당했지만, 오히려 “인간의 모습을 한 신”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신이 예수의 몸으로 육화했다는 성육신 교리와 그의 죽음과 부활이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준다는 믿음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팔레스타인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를 향한 기독교의 확장이 이어졌다.
서양의 핵심 종교인 기독교는 신성과 교리 해석을 놓고 서로 다투면서 로마제국 시대에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으로 분리되고 근대에 들어와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로마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개신교)와 나누어진다. 개신교도 개혁교회, 장로교, 루터파로 크게 분리된 이후에도 지속해서 세분되어 왔다. 신은 절대자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존재 가치와 의미는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종교의 속성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철학과 사상이 신의 존재를 탐구해온 방식에 따라 신의 실존과 속성에 대해서도 시대별로 해석이 달라져 왔다.
근대 이전 교부와 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 서방 기독교 전통을 통합하려고 시도하면서 신을 최고의 존재이자 세계의 창조주라는 입장을 대체로 견지했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신은 고난과 십자가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으며 칭의(稱義)를 통해 개인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토대 위에 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만들어냈다.
16세기 말~19세기 초까지 이어진 계몽주의의 시대에도 신은 그 영향력을 잃지 않았지만 19세기 초에 이르러 무신론이 확실한 시대의 의제가 되면서 신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점차 생겨나기 시작했다.
포 이어 바흐, 마르크스, 다윈, 니체, 프로이트 등이 무신론의 흐름을 견인했다. 특히 니체는 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인간이 스스로 신(초인)이 되는 철학을 제시했다.
포스트모던 시대인 현대에 들어와서는 신을 이야기 한 사람은 거의 없고 신을 인간이 만든 투사물에 불과하다면서 점차 신을 배격하고 있다. 도킨스 등 일부 무신론자들은 급기야 종교의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사회에 팽배한 목적 상실, 소외, 문화적 혼돈과 폭력은 현대인들이 이 시대에 걸맞은 신 개념을 창조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4000년의 역사 속에서 삶의 경이와 표현할 수 없는 의미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 항상 자신을 위한 믿음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이 시대에 걸맞은 신 개념을 창조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간은 공허함과 황량함을 견딜 수 없기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그 공백을 메울 것”이라면서 “미래를 위한 활기찬 새 신앙을 창조하려면 신의 역사에서 교훈과 경고를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카렌 암스트롱은 열일곱 살에 로마가톨릭교회 수녀원에 들어갔지만 7년 만에 환속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신을 느끼려고 했지만 신은 결코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했고 신에 대한 믿음이 자신에게서 사라졌기 때문에 수녀원에서 나왔다고 스스로 밝힌다.
그녀는 영문학을 전공한 이후 종교학자로 삶의 방향을 정한 이후 오랫동안 신을 탐구해오면서 종교학 분야에서 뛰어난 책들을 저술했으며 종교 간 화해와 평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오고 있다.
『신의 역사』는 종교 철학 책이나 교리처럼 딱딱하지 않아 역사서처럼 흥미롭고 쉽게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자신의 신앙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신에 대한 개념과 해석을 진솔하면서도 유려하게 서술해 더욱 공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톨릭 신자이지만 신에 대한 신앙심이 별로 깊지 않은 나에게도 책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먼저 신에 대한 믿음이 약하지만 자신 안에 있는 종교적 믿음은 계속 키워야 한다는 저자의 언급은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다. 사실 성당에 다니면서 접하는 성경‧교리‧강론 내용에 대해 모두 공감하기 어렵고 일부 회의감을 느끼지만 성당 미사 참여 중에 자신과 이웃들을 둘러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마저 갖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공허함과 황량함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신에 대한 체험이든지 종교적 경험이든지 간에 내 안의 영성, 신적인 정신은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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