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정호승)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정호승)

백재선 / 전임기자

를 읽은 지 오래되었다. 이전에 관심을 가졌던 시인은 김수영, 신경림, 김남주 등 사회참여 계열 시인들이었다. 이들의 시를 읽으면서 어두운 시대에 답답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문학 서적보다는 인문 서적을 주로 읽다 보니 시와 소설 읽기는 멀어졌다.

 

정호승 시인이 펴낸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라는 시가 있는 산문집을 읽었다. 정 시인의 책은 시들어진 시에 대한 나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켜 주었다.

 

시인은 60편의 시와 함께 이들 시의 배경이 되거나 계기가 된 이야기들을 산문으로 풀어썼다. 책에 나온 시와 산문은 모두 시인의 삶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일흔이 된 시인의 그동안의 삶의 외로운 흔적과 그리운 편린들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은 그동안 자신을 이루게 했던 부모님과 지인들을 위해 썼던 시들의 배경을 산문으로 전해준다.


어렸을 때 새벽에 연탄불을 들고 교회에 다녔던 어머니가 시를 통해 삶의 고통을 견뎌 내고 계셨던 것을 알았던 시인은 죽은 어머니의 관에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라는 시를 넣어드렸다.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라는 시는 사업 실패로 침묵 속에 살았지만 맑고 깨끗한 영원을 지닌 아버지를 위해 바친 시다.

 

정 시인의 시와 산문은 거의 잊혀 가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나의 소홀함과 무관심을 일깨워준다. 우리 부모님도 사업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자식을 서울로 유학을 보냈고 나는 그런 부모님 덕분에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얼마 전에 두 분의 묘소를 다녀왔지만, 급히 인사만 하고 돌아와야 하는 자신이 죄송스럽기만 하다.

 

시인은 우리 시대의 성자인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며 <명동성당><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이라는 시를 썼다. 작고 전 큰 병환으로 고통을 겪은 김 추기경을 회고하면서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라는 추기경의 말씀을 책에서 전한다.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기도하면서 열심히 살아라” “서로 밥이 되어라” “노점상 물건값 깎지 말아라라는 추기경의 당부는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시인은 무소유를 실현한 법정 스님을 추모하며 <초상화로 내걸린 법정 스님>이라는 시를 썼다. 법정 스님은 세상을 떠나면서도 관도 만장도 없이 사리 수습도 하지 않고 탑도 세우지 않는 검소한 수도자의 무소유 정신을 실천했다. 시인은 법정 스님을 위해 <무소유의 맑고 찬 샘물 한 그릇>이라는 조시를 일간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시인이 맺은 정채봉 동화작가와의 인연과 정은 친형제만큼이나 두터웠다. 그는 간암으로 병원에 입원한 작가를 위해 두어 달 동안 간병인 역할을 하며 같이 시간을 보냈다. 정채봉 작가가 세상을 뜨자 시인은 <먼 길 떠나시는 채봉 형님에게>라는 장문의 시를 썼다. 시인은 작가를 위해 동심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염원을 담았다고 토로한다.

 

정 시인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과 다녀왔던 방문지에서도 얻은 영감을 시로 썼다. 고향인 대구 수성구 범어천과 경주 첨성대 인근 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하동 섬진강, 와불상과 석불상이 있는 화주 운주사, 백두산과 용정 윤동주 생가와 묘역 방문에 얽힌 체험과 이야기가 시로 승화되었다.

 

시는 인간을 이해하게 하고 인간의 삶을 위안해주는 것이다라는 정 시인의 지론대로 자연과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시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다. 시인이 테마로 삼은 고향의 자연,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과 부모님의 사랑은 우리가 늘 마음속에 담아야 하는 유산들로 기억해야 한다.

 

시인은 인간은 사랑을 받아도 외롭고 사랑을 받지 않아도 외롭다는 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면서 이 책이 그 본질을 이해하고 긍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독자들에게 자신의 소망을 밝힌다.

 

시인은 수선화를 은유해서 인간의 외로움을 노래한다.

 

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거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러퍼진다

  

이 글은 백재선 기자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daul79)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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