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프랑스 전직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도보여행기이다. 저자는 오래전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다녔던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장장 1만 2천 킬로미터를 걸었다. 그는 은퇴 후 6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4년에 걸쳐 1,099일간의 실크로드 도보 여행기를 3편에 나눠 책으로 썼다.
저자는 숱한 위기와 고난 속에서도 도보여행만을 고수하고 여행 중에 겪었던 일상을 일기처럼 기술했다. 여행기는 방문지의 사람들과 경치와 풍습들을 요란스럽고 화려하게 소개하는 일반적인 기행문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여정과 느낌들을 꼼꼼히 담아냈다.
그래서 그의 여행기에서는 대부분의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저자의 느낌과 생각만을 읽을 수 있다.
베르나르의 관심은 결국 여행 중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모아졌다. 터키‧이란‧ 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중국 등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도 있었 고 악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악랄한 도로 강도나 고압적인 지방 관리들 때문에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환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계속 걸을 수 있었다. 언어가 달라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안 했지만 하룻밤 신세를 지면서 사귄 이국 사람들에 대해 깊은 우정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실크 로드 여행에 앞서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 그는 산티아고 길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으며, 결국에는 실크로드 대상들이 남긴 흔적을 쫓아보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먼 길의 흔적을 더듬어가려면 기존에 자신이 알던 모든 것을 버리고 가볍게 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즉 길 떠남은 모두에게 운명적이며 그리고 언젠가는 모든 걸 버려야 한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베르나르는 결국 은퇴 후 무료한 삶을 탈피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실크로드 도보여행에 자신을 던지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굴복하고 싶지 않다. 나는 가야만 한다. 살아있는 한 인간은 가야하니까”
그에게서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가 길을 꿈꾸는 일이었다.
“노년의 덜미에 붙잡히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겐 아직도 만남과 새로운 얼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고집스럽고 본능적인 욕망이 남아있다. 걷는 것에는 꿈이 담겨있다. 그래서 잘 짜인 사고와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그는 도보여행을 통해 기존의 것을 버리고 자신이 나아갈 길을 새로 찾게 된 것이다.
베르나르는 걷기의 의미에 대해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걷는 것은 도약이며 움직임이다. 고독은 도피가 아니라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기에 고독을 제대로 음미해야 한다. 걷는 것은 조화로움을 만들고 또 자리 잡게 한다.
그는 도보여행을 통해 자신을 비우는 동시에 낯선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되었다. 걷기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력은 비행 청소년들에게 도보여행을 통해 재활의 기회를 주는 쇠이유(Seuil) 협회를 설립하게 만들었다.
베르나르의 책은 회사 퇴직을 앞둔 이나 은퇴를 앞둔 나에게 시사한 바가 크다. 무엇보다 퇴직자가 가져야 하는 꿈의 의미와 실현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이든 사람의 꿈은 과거 삶의 복귀가 아닌 새로운 삶을 추구하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회나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얽매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왔지만 은퇴 후 삶은 스스로에게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한다.
조직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난 만큼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 홀로서기는 과거를 회고하거나 외부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 결코 이룰 수 없다. 이제부터 남이 만들어 준 꿈이 아니라 자신이 희망한 꿈을 찾아야 한다.
베르나르의 책은 은퇴 후 삶의 자세에 대해서도 큰 가르침을 준다.
그는 오로지 걷는다는 도보 여행의 원칙을 스스로 세우고 1만 2천 킬로미터의 대장정 기간 내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켜냈다.
그는 몸이 만신창이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도 차량에 탑승하라는 주변의 숱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오직 걷기만을 고집했다. 그의 도보 여행 약속은 누가 지켜보거나 감시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는 스스로의 약속을 이행했다.
어떻게 보면 은퇴 이전의 삶은 남을 의식하거나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지만 은퇴 후의 삶은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온전히 자신에게 바쳐야 한다. 은퇴 후의 삶은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자신과의 약속을 어떻게 실현하느냐에 결국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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