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철학(김상봉과 고명섭의 철학 대담)
전남대 김상봉 철학 교수와 한겨례신문 고명섭 위원의 대담집이다.
김상봉 교수가 그동안 저술한 책 내용에 대해 고명섭 위원이 묻고 김상봉 교수가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책은 주체-철학의 첫걸음, 만남-철학의 심화, 공동체-철학의 전개 등 3부로 나눠 전개된다. 철학 교수들이 대부분 해설 방식으로 서양철학 이론을 소개하고 있지만 김교수는 해설에 머물지 않고 해석과 비판을 제시하고 있다.
김교수는 이번 대담집에서 서양철학이 자기동일성의 일관된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타자를 배제하여 결국 홀로 주체성에 빠져들고 있는 점을 문제점으로 들고 있다. 그는 이미 자신의 기존 저서를 통해 서양 근대 철학을 자기만족과 도취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인 나르시스에 빗대어 설명해왔다.
김교수는 서양 정신의 역사 전체를 가리켜 나르시스의 꿈이라고 비유하면서 서양 정신의 역사를 나르시시즘의 전개 과정으로 파악한다. 서양정신사를 자기도취에 빠진 영혼의 꿈과 동경, 자기 자신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사로잡힌 영혼의 좌절과 절망의 기록으로 본다.
김교수는 서양철학은 모두 홀로 주체적인 자기동일성의 세계관에 갇혀 있다고 주장한다.
근대 서양철학은 독일 관념론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복귀하는 경향으로 흘러가면서 자기동일성의 존재가 근대 철학의 골격이 되었다. 나는 나라는 자기동일성 인식이 분화되고 전개되면서 결국에는 그것이 삼라만상의 진리가 되고 철학의 중심 내용이 되어 버렸다.
김교수는 서양철학의 사유를 총체적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주체성의 이념을 제시한다. 그는 홀로 주체성의 철학이 아닌 만남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는 서로 주체성의 철학을 주창한다.
내가 고립된 자기 관계가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됨으로써 서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주체성은 슬픔과 기쁨을 서로 나누고(감성), 서로에게 책임을 느끼고 의무를 다하고(의지), 더불어 생각하고 판단하는(생각) 세 가지 계기를 통해 발현될 수 있다.
김교수는 서양철학의 한계를 파악하면서 우리 철학의 부재를 지적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내재한 사상의 미비와 사고의 부재를 가져온 원인에 대해 이데올로기 적대성과 사대주의 폐해를 언급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감성과 공감의 능력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억압되고 왜곡되어 왔다, 이데올로기 적대성 때문에 증오의 감정은 과도하게 충족되는 반면 자기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은 억압되다 못해 마비되기까지 한다.
조선 시대 이래 지금까지 이어온 성리학의 사대주의 전통도 우리 역사 속에서 절대적 타자에게 자기를 종속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김교수는 함석헌·한용운 등 근현대 들어 우리 사상가들이 품었던 사랑과 평화를 통해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서로 주체성의 철학을 배태할 씨앗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드러낸다.
특히 서로 주체성의 이념은 우리 현대사의 대사건인 5.18을 통해 현실감을 얻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5.18 항쟁을 이끈 민초들의 정신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정한 응답이고 항쟁 과정에서의 만남을 통해 공동체를 참된 의미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나라로 만들게 되었다.
홀로 주체성의 철학이 아닌 서로 주체성의 철학을 주창하는 김교수의 관점은 당연히 개인에 있지 않고 공동체로 향하고 있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김교수는 다른 철학 교수들이 언급을 꺼리는 사회문제를 이슈화해 철학적인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사대주의, 학벌, 남북 분단. 지역 갈등, 보수와 진보 대립 등에 대해 철학적인 관점을 갖고 소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김교수의 이러한 태도와 주장에 대해 다른 입장세 서서 이의와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입장을 철학적인 차원에서 정리해서 분명히 의견을 제시하는 그의 진정성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철학 강의를 듣거나 철학책을 보면서 그 내용이 대부분 용어나 자구 해석에 크게 벗어나지 못해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김교수의 이야기는 서양철학의 큰 흐름을 짚어주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까지 제시해주고 있어 이해도가 훨씬 높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철학 정립을 강조하는 김교수의 이야기가 크게 와 닿는다.
남의 철학 흉내 내기가 아니라 스스로 철학의 출발이 중요하다. 우리 자신이 형성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우리 자신의 역사적 삶에서 길어낸 철학만이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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