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버린 사람들/김효순』
유신독재ㆍ군사정권 시대에 자행됐던 재일 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들은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들어 하나 둘씩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재일 교포 유학생 간첩 사건을 다룬 『조국이 버린 사람들』이라는 책을 보고 70~80년대 소용돌이 혼동 속에 대학을 다녔던 나로서는 만감이 교차했다. 당시 국내 운동권 인사들의 움직임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유학생 간첩단 사건들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운동권 인사들이 군부 독재 세력들에 의해 당한 핍박 사건들은 언론에 의해 알려진 경우가 많았지만 재일 교포 간첩단 사건 관련자들이 겪은 희생과 피해는 거의 묻혀져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재일 한국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언론인 출신 김효순 진실과 정의 포럼 대표가 재일 교포 학생 간첩단 사건의 실체를 재조명하기 위해 쓴 것이다.
김대표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인 이석태 변호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2010년부터 계속 진행되어온 재일 둥 젖 먹이기 학생 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의 재심 결과를 정리하면서 개별 피해자들의 삶을 깊이 있게 다뤘다.
이변호사는 재일 교포 학생 간첩단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이들의 억울한 내용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공유하기 위해 저자에게 집필을 부탁했다고 한다.
70~80년대 군사 독재 시대 하에서 수사기관들은 재일 교포 유학생을 상대로 경쟁적으로 간첩 만들기에 몰입했다. 당시 수사기관들은 모국어가 서툰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협박은 물론 고문을 가하면서 체제 옹호를 위한 간첩으로 조작했다.
공안기관의 무도한 행위로 현해탄을 건너온 재일 유학생 상당수가 영문도 모르게 모국에서 사형수나 장기수 판결을 받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재일 교포 어느 여학생은 수사기관의 폭압적인 성고문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했지만 이를 용기 있게 폭로하기도 했고 공안당국의 야만적인 고문에 맞서 자신을 불사르면서 양심수로 오랜 수형 생활을 해온 유학생도 있었다.
재일 교포 유학생 사건은 공안기관의 조작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지만, 수감 중에도 극심한 피해를 보았다. 재일 교포 유학생 중 사형 선고를 받은 수인들에게는 감형을 받기 전까지 수갑이 채워졌다고 한다.
이러한 악습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치안유지법을 따른 것으로 일본은 종전과 동시에 폐지되었으나 우리는 유신독재․군부 독재로 이어지면서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
서승과 서준식 형제는 형이 끝난 뒤에도 보안 감찰이라는 명분으로 각각 장장 19년, 17년 동안의 수형 생활을 했다. 이들은 비전향수인지라 외부 출역도 금지되고 종일 독방에서 수감 생활을 하면서 서신과 면회는 물론 독서까지 금지를 당하는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압을 받았지만, 피해자들은 야만의 시대에 억울함을 토로하기보다 시대의 흐름에 같이 했을 뿐이라고 밝혀 보는 이를 뭉클하게 하고 있다.
징역 10년 만기를 채웠던 김원중(서울대 경제학과 재학)씨는 모국에 있는 동년 세대의 젊은이들이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던 상황에서 자기가 감옥에서 허송세월하였거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사형 선고를 받고 13년이나 감옥살이를 했던 강종헌씨도 조국의 민주화 흐름에 동참한 것에 대해 지난 세월을 억울하지 않게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이 책에서는 당시 국내에서 재일 교포 간첩단 사건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일본의 뜻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석방을 위해 안간힘을 써온 이야기들도 들려준다.
일본 지식인들은 전도양양한 청년들을 간단히 죽여 버리려거나 매장하려는 야만적인 한국의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그들을 탄원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이들은 모국에서 철저히 외면을 받고 있는 유학생들을 돕기 위해 자비를 들여 면회를 오거나 일본 내 여론 환기에 꾸준히 노력을 해왔다. 이들의 이야기도 국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이번에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야만의 시대에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촛불로 드러난 민심이 이를 막았다. 국민이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야만의 시대는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다.
과거사 진상 조사로 이전 공안기관과 사법기관들이 저지른 죄악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지만 재일 교포 유학생들에 대한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이들 기관의 사과는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는 저자의 간곡한 당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피해자들의 정신적 상흔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줘야 하고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진상을 밝히고 기억하는 작업을 잠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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