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문화/배리 글래스너』를 읽고
미국의 사회학자 배리 글래스너는 오래전에 미국 사회의 공포팔이 언론과 권력자들의 이중 전략에 대해 분석을 담은 『공포의 문화』라는 책을 발간했다.
글래스너 교수는 책을 통해 권력을 잡기 위해 또는 사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미국 내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들이 가짜 뉴스와 조작된 통계로 대중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발한다.
글래스너의 책은 대중의 공포와 불안을 먹고 사는 언론과 정치인, 언론과 기업의 생태에 대한 저자의 예리한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 때문에 초판 당시 큰 호평을 받았다. 책이 처음으로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2018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저자는 여전히 살아남은 공포팔이 미디어와 더 강력해진 권력자들을 고발하는 내용을 추가해 재출간했다.
저자는 “새로운 시대에도 미국 사회에서 공포팔이 미디어와 권력자들의 이중 전략에 의한 공포의 문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음은 물론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정치인‧언론‧기업인‧압력 단체들은 표심, 시청률, 이익, 기금을 얻기 위해 대중을 상대로 위험들을 계속 부풀리고 퍼뜨린다. 공포의 대상이 일부 달라져도 공포를 퍼뜨리는 전략은 거의 비슷하다. 반복하고 호도하고 개별 사고를 모아 사회적 흐름으로 부풀리기 같은 구닥다리 기법으로 공포 행상인들은 여전히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특히 공포팔이 정치인들은 사실과 통계를 조작해 대중의 공포를 유발한 다음, 여론을 잠재울 정책을 제시해 권력과 이권을 다진다. 언론사들도 독자들의 공포심을 자극할 만한 헤드라인과 기사로 정치인들의 비열한 전략에 호응하면서 이득을 취한다. 한번 공포심에 휘둘린 대중의 마음속엔 걱정과 불안만 커지고 결국에는 올바른 판단력을 잃어가게 된다.
저자는 학교를 둘러싼 가짜 뉴스, 사실 왜곡과 통계 조작, 유색 인종에 대한 불공정한 이중 잣대, 약물에 중독된 뉴스들, 질병으로 장사하는 사람들 실제 미국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어 대중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사례들을 책에서 상세히 기술한다.
또한 미국 내 극우 보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공포 문화 조성에 앞장서고 이를 활용하고 있는 사례를 적나라하게 소개한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취임 초부터 시작하여 퇴임하는 시점까지 계속 우려먹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은 다소 모호하게 들리지만, 미국은 물론 세계 시민을 대상으로 공포의 문화를 조성하는 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부시 행정부는 ‘국토안보부’라는 새로운 정부 기구를 만들어 테러에 대한 공포를 체계적으로 퍼트렸다. 국토안보부가 만든 5단계 테러 경보 단계가 높아질수록 대통령 지지율도 함께 올라갔다. 부시는 2014년 재선 운동 당시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중요한 시점마다 테러 경보 수준을 높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실제 국토안보부는 대선 직전 테러 경보를 상향 발동함으로써 대중의 시선이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아니 테러와의 전쟁을 이끄는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 향하게 했다.
부시 행정부가 9.11테러를 활용해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느라 수만 명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견 미군들과 가족들이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또한 미국은 명분 없는 전쟁과 공포를 유지하기 위해 수조 달러를 투입해야 했다.
트럼프는 선거 운동 기간 중 “국민은 사랑이 아닌 공포에 반응한다”는 닉슨 대통령의 교활한 교훈을 답습하고 그의 전철을 차근차근 밟아갔다. 트럼프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발생하는 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공포를 느끼는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과 보수주의자 유권자들의 불안감을 조성해 이들을 주요 지지층으로 만들었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기간 중 민주당이 기독교를 나락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유색 인종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모든 기회를 동원해 이슬람 테러범에 대한 공포를 고조시켰다.
트럼프가 유색 인종과 이슬람교도에 대해 부정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관점을 드러낼수록 지지층은 결집하기 시작했다. 인종 차별, 동성애 혐오, 반유대주의 등 미국 사회에서 터부로 여기는 사항을 이슈화시키자 백인 민족주의자들은 더욱 결집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트럼프는 이전 정치인들이 넘지 않은 선을 과감하게 넘어 사람들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편견까지 직접 건드려 선거 전략으로 활용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는 심지어 매년 수만 명을 죽이는 무기와 사회적 편협성보다 정치적 올바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치인들 때문에 미국민이 고통받고 있다는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트럼프는 언론의 균형 보도라는 진부한 보도 형태를 자신에게 유리한 도구로 십분 활용했다. 균형을 맞추려는 언론의 보도 행태는 미국 시민들에게 트럼프 측이 조성한 잘못된 공포를 심어주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주류 언론들이 권위 있는 학자들이 말하는 만큼 가짜 전문가들을 불러내 그들에게 똑같은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시청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미국 언론이 주관을 배제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원칙을 중시하지만 이러한 원칙에 집착하다 보니 거짓말쟁이와 사기꾼들의 목소리에도 힘을 실어주고 이들의 극단적인 시각에도 신빙성을 부여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기성세대 대신 젊은 세대들에 “공포팔이 미디어와 권력자들에게 기반을 마련해 주는 공포의 문화에 헛소리라고 당당하게 계속 외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한다.
공포 문화가 정치인‧언론‧기업‧단체 등에 의해 쉽게 조성되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이전 보수정권의 주도로 생긴 종편 방송 출범 이후 신문 방송을 포함한 우리나라 언론계 지형은 크게 바뀌었다. 언론이 내세우고 있는 공평 부당함은 이제 찾을 수 없고 너무 정파적이고 자사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특히 신문과 종편 방송을 소유한 일부 재벌 언론은 공적 미디어 기능을 버리고 언론사의 이익 실현에만 앞장서는 사영(私營) 언론이 된 지 오래되었다.
이들은 정권과 결탁하여 여론을 주도하면서 오로지 자기네들의 기득권과 특권 유지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언론은 최소한의 중립이나 균형 보도는 차치하고 정권이나 자사에 유리한 보도를 하고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정권 교체 이후 극우 보수정권과 족벌 사영 언론이 유착하여 여론을 주도하면서 반정부 인사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터무니없는 비난을 일삼으면서 공포 문화를 조성하는 행위이다.
저자는 미국인들에게 부당함을 외치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권언유착의 부당함에 맞서 연대해서 싸워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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