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란봉투법, 노동권 강화의 명분 뒤에 가려진 투자 위기
국회가 마침내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세 번째 도전 끝에 이뤄낸 결과다. 노동계는 “20년 숙원”이라며 환호했지만, 기업과 투자자들의 불안은 그만큼 깊어졌다. 이번 법은 원청도 교섭 의무를 지게 하고, 파업 손해배상은 불법·폭력행위로 한정한다.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방식과 속도는 한국 경제의 예측 가능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원청을 교섭 상대로 세운 조항은 모호하다. 어디까지가 정상적인 발주·품질 관리이고, 어디서부터 노무 지배가 되는지 경계가 불분명하다. 결국 현장에서는 분쟁과 소송이 늘어날 것이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 경쟁력과 투자환경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응은 더 민감하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즉각 우려를 표한 것은 단순한 의례적 발언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투자지 선택에서 ‘법적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본다. 이번 법으로 한국이 “예측 불가능한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신규 외국인 직접투자는 위축되고 국내 기업의 해외 증설은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조선·자동차·배터리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 경쟁 속에서 납기와 생산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교섭 구조가 복잡해지면 한국의 위치는 더욱 흔들릴 것이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은 상대적으로 강경한 길을 택했다. 영국은 불법 파업에 손배 상한을 두고, 독일은 평화의무 위반에 한해 책임을 묻는다. 일본은 정당한 쟁의엔 손배를 금지하지만 원청 교섭 의무를 일괄적으로 확대한 적은 없다. 미국은 원청 책임 범위를 좁게 해석하면서도 불법 보이콧에는 막대한 손배를 부과한다. 그런데 한국은 손배 제한과 원청 교섭 의무 확대를 동시에 추진했다. 균형 장치 없이 노동자 쪽으로만 기울어진 셈이다.
물론 노동계의 주장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손배와 가압류가 노동자를 법정으로 내몰아 대화 자체를 가로막아온 현실은 분명 존재한다. 합법적 파업이 보호되고, 교섭 문화가 정착된다면 장기적으로 노사관계가 건강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이다. 단기적 충격을 흡수할 안전판과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법은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 정치적 승리감에 취할 때가 아니다. 법의 시행까지 남은 6개월 동안, 사용자성의 경계와 교섭 절차를 명확히 하고, 불필요한 혼란을 최소화할 운영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노동권 강화라는 성과와 함께 투자 유출이라는 대가를 동시에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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