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 안에 로켓엔진이? 기생충 속 나노기계의 비밀
매년 60만 명을 죽이는 기생충, 그 속에 숨겨진 나노 기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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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혈구 하나의 지름은 약 8마이크로미터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그 안에 말라리아 기생충 플라스모디움 팔시파룸이 들어앉는다. 기생충 자체도 이미 기묘하고 무서운 존재지만, 그 기생충 안에는 더 작은 것들이 또 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기생충 내부의 아주 작은 방 안에서 무언가가 쉬지 않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과학자들이 이것을 처음 포착한 건 꽤 오래전이다. 하지만 왜 도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유타 대학교 생화학과의 폴 시갈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꺼리게 됩니다. 이 결정체들의 움직임이 너무나 기묘하고 설명이 안 되다 보니, 수십 년 동안 기생충학의 '사각지대'로 방치됐던 것입니다."
그 사각지대가 지난 10월, 드디어 밝혀졌다. 정답은 뜻밖에도 — 로켓 과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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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먹고 독을 만드는 기생충의 딜레마**
말라리아 기생충이 적혈구 안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피를 먹는 것이다. 정확히는 적혈구 안에 가득 찬 헤모글로빈을 소화시킨다. 헤모글로빈은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인데, 분해하고 나면 철분이 담긴 헴(heme)이라는 화합물이 잔뜩 남는다. 문제는 이 헴이 기생충 자신에게도 독성을 띤다는 것이다.
기생충은 이 문제를 기막히게 해결했다. 독성 헴을 헤모조인(hemozoin)이라는 작은 결정체로 굳혀버리는 것이다. 500나노미터 크기의 벽돌 모양 결정체들. 이 결정체들은 기존에 '쓰레기를 무해하게 포장해두는 저장 창고'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 결정체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살아 있는 기생충 안에서 이 결정체들은 춤을 춘다. 빙빙 돌고, 튕기고, 사방으로 충돌하며, 마치 과부하 걸린 세탁기 안의 동전처럼 빠르고 혼돈스럽게 움직인다. 너무 빠르고 불규칙해서 기존의 과학적 분석 기법으로는 추적조차 어려웠다. 그리고 기생충이 죽으면, 결정체들도 멈춘다.
단순한 저장 창고가 이럴 리 없다. 무언가가 이것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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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과산화수소, 그리고 로켓**
유타 대학교 연구팀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결정체의 주변 환경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헤모글로빈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기생충은 부산물로 과산화수소(H₂O₂)를 대량 생산한다. 과산화수소는 세포에 극도로 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그리고 결정체들의 표면에는 철이 노출되어 있다. 철과 과산화수소가 만나면?
연구진은 헤모조인 결정체가 과산화수소를 물과 산소로 분해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반응이 에너지를 방출하고, 그 에너지가 결정체를 회전시키는 추진력이 된다. 연구진이 이 메커니즘을 보고 떠올린 비교 대상은 다름 아닌 우주 발사체였다. 과산화수소를 분해해서 추진력을 얻는 것, 그게 바로 로켓 엔진의 작동 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의 에리카 헤이스팅스 박사는 말했다. "이 과산화수소 분해 반응은 대형 로켓을 추진하는 데 사용돼 왔습니다. 하지만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이것이 관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연구진은 기생충에서 결정체를 분리해 과산화수소만 넣어봤다. 기생충이 없어도, 과산화수소만으로 결정체를 회전시키기에 충분했다. 반대로 산소 농도를 낮춰 기생충이 과산화수소를 덜 만들도록 했더니, 기생충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데도 결정체의 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결정적인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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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돌아야 하는가**
결정체가 로켓처럼 추진된다는 사실은 밝혀졌다. 그런데 왜 굳이 돌아야 할까?
연구진은 두 가지 가설을 내놓는다. 첫째, 과산화수소 자체를 '태워버리기' 위해서다. 과산화수소는 세포에 극도로 해로운 물질인데, 결정체가 끊임없이 회전하며 이를 분해함으로써 기생충 스스로를 독성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둘째, 새로운 헴을 계속해서 결정화하기 위해서다. 결정체들이 서로 뭉쳐버리면 표면적이 줄어들어 새로운 헴을 빠르게 굳힐 수 없다. 쉬지 않고 움직임으로써 서로 달라붙지 않고 효율적인 '쓰레기 처리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두 역할 모두 기생충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래서 기생충이 살아 있는 한 결정체는 돌고, 죽는 순간 멈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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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약점이 열리다**
이 발견이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말라리아는 지금도 매년 6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질병이다. 그리고 기존의 말라리아 치료제들은 내성이 점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헤모조인 결정체의 회전을 멈추는 약을 만든다면? 이 메커니즘은 인간 세포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생충만의 독자적인 생화학 작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표적으로 하는 약물은 부작용이 훨씬 적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생충의 생존 엔진 자체를 꺼버리는 신개념 치료제의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회전하는 결정체들은 생물학적 시스템 안에서 발견된 최초의 자기추진 금속 나노입자다. 과학자들은 이 자연이 설계한 나노 로켓에서 영감을 얻어, 약물을 원하는 세포까지 정확히 전달하는 나노 로봇을 만드는 데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기생충의 '사각지대' 안에, 로켓 과학과 신약 개발과 나노 로봇 공학의 씨앗이 함께 숨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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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NAS(미국 국립과학원 회보), 유타 대학교 헬스, ScienceDaily (2025. 10. 28 / 2026.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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